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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면 '해룡'은 어디서 왔을까

1914년에 붙은 조합 지명, 그러나 땅은 이미 용을 품고 있었다

김광기 발행인 겸 편집인 · 입력 2026.08.29 · 최종수정 2026.09.14 · 조회 8

이미지: AI 생성 · 실제 현장 사진이 아닙니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면. 아파트 숲이 들어선 신대지구와 산업단지를 품은 순천시 해룡면이다. 그런데 이 '해룡(海龍)'이라는 이름, 바다의 용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두 글자를 붙여 만든 이름

1896년 고종 33년, 이 일대는 북쪽의 해촌면(海村面)과 남쪽의 용두면(龍頭面) 두 개 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이 통합되면서 해촌면의 '해'와 용두면의 '용'을 따 해룡면이 됐다. 이름 짓는 데 걸린 고민이 그리 길지 않았을 법한 조합이다.

이후 1949년 순천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왕지·조례·연향 3개 리가 순천시로 떨어져 나갔고,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순천시 해룡면이 됐다. 금당지구 개발로 1995년 상삼출장소가, 신대지구 개발로 2016년 신대출장소가 들어섰다. 이름은 100년 전에 붙었지만 땅은 계속 변해온 셈이다.

🤖 AI 생성 이미지

그런데 진짜 '해룡'은 따로 있다

순천에는 오래전부터 '해룡'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곳이 따로 있었다. 고려시대 13조창 중 하나였던 해룡창(海龍倉)이다. 지금의 순천시 홍내동·오천동 해룡산 일대로, 순천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순천만 안쪽 깊숙한 자리였다. 지금은 농경지로 개간됐지만 고려 때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다.

추수가 끝나면 전라도 동남부의 조세를 여기 모았다가 2월에 발송을 시작해 4월까지 마치도록 했고, 1,000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이 개경까지 세곡을 날랐다. 지금도 해룡산 정상부와 남서쪽 평지에서는 그때 쓰였을 기와 조각과 청자 조각이 종종 눈에 띈다.

즉 원조 '해룡'은 지금의 해룡면이 아니라 시내 쪽이다. 이름은 남쪽으로 건너왔고, 뿌리는 북쪽에 남았다.

🤖 AI 생성 이미지

죽어서 바다용의 신이 된 사나이

해룡산성에는 한 인물의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후삼국시대 순천의 호족 박영규다.

『강남악부』는 옛 순천읍지를 인용해 그를 이렇게 적었다. 견훤의 사위였고 이 땅의 군장이었으며, 해룡산 아래 홍안동에 웅거하고 있다가 나중에 고려에 투항해 좌승 벼슬을 얻었다. 후백제에서는 부마, 고려에서는 국구였다. 세 딸을 각각 태조 왕건과 정종에게 시집보내, 견훤의 사위이면서 왕건의 장인이 됐고 아들 정종의 장인까지 됐다.

배신인가, 지역을 지키기 위한 선택인가. 호족들은 자신의 지배 영역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 유력한 지배자에게 귀부했고, 박영규 역시 순천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왕건에게 귀부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마지막 한 줄이 압권이다. 조선 전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박영규는 죽어서 해룡산신(海龍山神)이 되었다. 해룡산에는 해룡산신 박영규 장군을 모시던 해룡산사가 있었고, 정상에는 망월정이 1920년대까지 서 있었다고 한다. 순천박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 AI 생성 이미지

산을 통째로 속임수에 쓴 사람들

해룡면 남쪽 하사리에는 앵무산이 있다. 이 산의 다른 이름은 양미산(糧米山), 곡식을 쌓아놓았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기 위해 산을 마름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해 적을 방비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산 아래에 세곡 창고인 해창(海倉)이 있었고 곡고산(穀庫山)·양미산이라는 이름이 앵무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 해창리라는 지명이 그 흔적이다.

📷 사진 자리 — 해룡면 하사리 앵무산 (사진 넣은 뒤 이 칸은 삭제)

귀신이 나와서 사당을 지었다

신성리 충무사에는 좀 더 서늘한 이야기가 있다. 신성리에서 맞은편 왜성을 바라보니 왜적의 귀신들이 출몰해, 주민들이 무서워서 충무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1690년 숙종 16년에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해 제사를 지내왔고, 일제에 의해 불타버린 것을 광복 후 1947년 순천향교 유림이 성금을 모아 복설했다.

🤖 AI 생성 이미지

이름은 조합, 정서는 용의 땅

정작 재미있는 것은 마을 이름들이다. 용전리는 마을 앞 커다란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 하여 '용(龍)'자를 쓰고, 현룡재전(現龍在田)이라는 성현의 말을 따라 '전(田)'자를 썼다. 산의 형상이 아홉 마리 용이 마을을 향한 것 같다고 하여 '용밭'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농주리는 마을 앞산을 용머리로, '파랑바구'라는 바위를 여의주로 여겨 용이 여의주를 희롱한다는 뜻의 농주(弄珠)가 됐다.

행정 편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땅은 이미 오래전부터 용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 참고자료 : 순천시 읍면동 소개(해룡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룡산성', 디지털순천문화대전(박영규·앵무산·충무사·용전리·농주리),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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